본문 바로가기

2022년 이전/일상사

마시는 술의 변천사로 나이를 느끼다


제삿날이 되면 할머니께서 주전자를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 가게가서 탁주 한되 받아 온나"

쫄래쫄래~ 룰루랄라~저 아랫 마을 가게에서 탁주 한되 받아 와선 부엌 부뚜막 위에 올려 놓는다
집에 오는 내내 새끼 손가락으로 탁주를 찍어서 입가심하고선, 것두 모잘라 부뚜막 위에 올려진 탁주를 조금 덜어선 설탕을 탄다..새끼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간을 맞춘 다음 홀짝~홀짝 마셨다...

초등생 시절 처음 술을 접한 기억이다...어른들 몰래 마신 술...조심조심~ 들키캐라 ㅎㅎ
설탕이 들어간 탁주는 달달하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고등학생때 맥주캔을 건넨 친구가 있었다...한모금 홀짝~니 맛도 내 맛도 없다..뭔 맛으로 마시남 ;;
하지만, 친구가 마시는 술이기에 그냥 마셨다...술맛도 모른채 말이다..
지금도 난 맥주맛을 모른다...가끔....그래..아주 가끔 땀흘린후 시원한 생맥이 생각날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가뭄에 콩날 확률과 비슷하니....그것도 맥주맛을 아는 거라고 하면 그런거겠지..하고..
갈증날때 마시는 시원한 맥주...그게 맥주맛이겠지...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늘 소주를 마셨다. 이상하게 직장인들은 대부분 쐬주를 선호한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톡 쏘는 듯한 독한 맛이 좋은가 보다..
멋도 모를때는 주면 주는대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누가 더 술이 센지 내기도 하고..
직장동료 집들이에 가선 부어라 마셔라~ 내기 하다 내 생애 최고의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다음날 동료들 얘기를 듣고선 내 귀를 의심 했으니 말이다..
" 술고래~ 술고래~ 그렇게 많이 마실줄은 몰랐어요~ 어캐 남자한테 지지를 않아! 어휴..집에 찾아간게 용하네 "

그러게...집을 찾아 간게 참..용하다 싶었다..내가 생각해도 말이다..그후로 그만큼 마셔본 적이 없다..미쳤지....참 이상한건...아직까진 술을 과하게 마셔도 필름이 끊긴 적이 없단 거다...스스로의 보호본능이 너무나 강해서인지....잠은 반드시 집에서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인지...큰 실수를 한적은 없었다..
물론..그후로도 계속되는 회식이며 술자리에선 분위기 맞춰 주느라 잘도 드리켰지만...결국 눈으로 뭔 음식 먹었는지 확인을 해야 했으니...술이란 몸에 좋지 않은 것이여~

직장 다닐때 그놈의 분위기가 뭔지 맞춰 주느라 먹고, 확인하기를 반복하다 보니..이젠 쐬주 쳐다 보는것도 싫다...쳐다만 봐도 쐬주 특유의 향이 느껴지면서 속이 뒤집힌다..입에 대기라도 하면 몸서리가 쳐지니 말이다...쇠주는 입으로 마시는게 아니라..말로 마신다~술술 잘도 넘어 가는구나~ 원샷! ㅎㅎ;;

그후 나이가 좀더 든 지금....
난 분위기가 편안한 전통 주점을 즐겨 찾는다..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서 파전이나 무침을 시켜 놓고선 동동주 한사발 따라주거니~ 받거니 하며 홀짝..홀짝...마셔댄다...맥주를 마시면 배가 부른것과 마찬가지로 동동주도 배가 부르다..하지만 기분 좋게 배가 불러 좋다... 가끔 집에서 술이 고플때는 생탁(탁주- 요게 참 맛있다..) 을 마셔 준다...요전 앞에 캠핑 갔을땐 옆 캠프에서 밀주를 주시길래 마셨더니...그 맛 역시 일품일세..빈속에 마셔서인지 은근히 취기가 올랐지만, 그 기분은 참...좋았단 말밖에는..ㅎ

                        


며칠전 밤
술이 고픈 친구의 부르심을 받고 나갔더니 호프를 마시자고 하는게다..난 동동주 묵고잡은디...
이러나 저러나 그리 많이 마시지 않을거라 호프 마시러 갔다..맥주잔에 술을 따르는 친구..거품이 넘친다.넘쳐...아까운 거품??? 함시롱 입이 먼저 컵으로 ~ 쓰~~~읍~

" 야...이 술꾼 표내냐? 사람들이 술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쨔샤~술꾼 표낸다 표내~
앞으론 빈티 나니깐 그러지마~ 특히나 다른 사람들 앞에선 말이야~"

" 아..술꾼이 그러는거였어?ㅋㅋ"

고놈의 술꾼은 호프 한두잔 마시고선 땡! 호프도 자꾸 목에서 걸린다..
메뉴판을 보니 소주칵테일도 있고~동동주 칵테일도 있는게다...우린 맥주가 받지 않아서 다시 술을 시켰다..물론 시킨 맥주 1700은 다 마시고 말이다..


동동주 칵테일...
음~~~캬아~~~ 이 맛이야~ 술이 술술 넘어가 술이랬쥐? 으흐흐~ 술술~ 넘어 가는구낭~
진작에 이걸 시킬걸 그랬어~^^;;



순한 술에서 시작해서 독한 술로 갔다가 다시 순한 술로 되돌아 오는것 같다.
나이가 드니 북적대며 담배 냄새 풀풀 풍기는 곳보다는 담배 냄새 없는 조용하고, 아늑한...그리고 편안한
전통주점을 즐겨 찾게 된다...

나이가 들면 곡주가 좋아 진다고 하더니....이젠 나도 나이가 드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