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2월이면 구들막에 잘 띄운 메주를 꺼내서 솔로 박박 문질러 곰팡이를 제거한 후에 된장을 담궜다.
천일염에 산에서 내려오던 물을 부어 농도를 맞추고, 독에 메주를 넣은뒤 천일염수를 넣고, 그위에
말려 두었던 빨간 고추에 시커먼 숯을 넣어 장독 뚜껑을 덮었다.
이렇게 두면 된장이 된다는게 신기할 뿐이었다...그때는..
할머니들이 담그신 그 된장맛이란......지금은 그 된장맛을 느낄수 없다는 서글픔이...
3월엔 경칩이 있지만 아직은 쌀쌀하다..
하지만 농사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는터라 농부는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녹기 시작하는 밭을 가는거다.
[ 이랴! 이랴~! 자랴~자랴~]
어린시절은 그랬다...학교 하교길에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 음메~] 소리와 함께 이랴~ 하는 어른들의
목소리...
4월은 볍씨로 논에 심을 어린 모를 키우는 준비 작업을 한다.
저게 쌀나무 씨았이었어??? 어릴땐 그냥 신기했었던 볍씨...
그렇게 5월이 되면
어느정도 자란 벼를 논 끝과 끝에 선을 고정 시킨후에 어른들은 선을 따라 모를 심기 시작한다.
모심는데도 요령이 있다면서 손을 조금 삼각형으로 만든 다음 요렇게 하라고 시키시던 어르신들...
어린 우리들은 식사시간 전에 중참을 먹는 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6월엔 감자를 캔다.
산으로 오르기를 20여분..쉬엄쉬엄 올라선 열심히 감자를 캐고선 한자루씩 담아서 날랐던 기억..
그리곤 가마솥에 깨끗하게 씻은 감자를 넣어 푹 삶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7월...천둥번개를 동반한 태풍..
고춧대를 세워 놨지만, 세찬 비바람에 혹시라도 꺽일세라 발을 동동거리며 밭을 올랐던 ..
논에 벼들이 바닥에 누워 버릴까 걱정 하던 달...
8월...
내리쬐는 뙤약볕에 일사병이라도 걸릴세라 동이 트기전 새벽, 부지런히 밭을 오른다.
사막같이 변해 버린 밭엔 골짜기에서 퍼온 물로 이곳 저곳 조리개로 물을 준다.
방학..할일도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소를 몰고 나가 맘껏 풀을 뜯게 심부름을 보내고,
우리들은 신나게 풀이 많은 산으로 들로 가선 소를 메어 놓고선 그늘에서 서리도 해가며 신나게 논다.
9월이면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느라 바쁘다.
김장고추에 도시로 나간 자식들 오면 챙겨 줄거라고 부지런히 따서는 햇볕 좋은 날에 골목 구석구석에
널어 놓은 고추...
먹구름이라도 끼는듯 하면 하늘을 관찰하다가 금새 치우고, 깔고를 반복하는..
이르면 10월 중순부터는 벼베기가 시작된다..
일손이 부족해 고사리손까지 빌리는 것도 모잘라서 하루는 이집, 또 하루는 저집~ 그렇게 농촌에서
하는 말..놉이라고 한다...그렇게 우리들은 이집 저집 다니면서 벼베기와 타작을 돕는다..
타작을 하는 날엔 온몸 구석구석 까끌거리면서 발갛게 되지만, 어른들의 일잘한다는 칭찬 한마디면
간지러움도 싸악..
11월에 익은 콩...
콩이 익으면 말라가면서 알아서 톡톡 터져버린다.
낫으로 콩을 베서 나르고, 밭에 떨어진 수많은 콩이 아까워 쭈그리고 앉아서 줍던 기억...
집으로 날라온 콩을 바닥에 푸대를 깔고 나무막대기로 팍팍 치면 여기저기 날아 다니는 콩들...
12월...한해 농사 마무리를 하고, 콩대나 고춧대를 밭에서 논에서 태우는 경우도 있지만, 울 동네에서
대부분 군불 넣는 용도로 사용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어른들이 나무를 해서 뗄감을 마련했던 시절이니..소중한 뗄감으로 콩대나 고춧
대는 손색이 없었다.
1월이면 할아버지 제사가 있었다...
촌에선 어른 생신, 제사 다음날은 동네 잔칫날이다.
넉넉하게 음식을 해선 음식 나눠 먹는 날 아침, 혹은 전날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아침 드시러 오셔야 한다는 말씀을 전달하러 다녔다.
내 기억속의 농촌..농사는 이러하다..
이 책..할머니의 농사일기는..내 어린시절..아무것도 모른채 어른들 따라 다니면서 호기심에 한 일,
살기 위해 했던 일들이었다..가끔은 어린시절처럼 그렇게 살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이런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농촌은 나에게..언제나 돌아가고픈 고향인게다..
책 한권으로 유년 시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는....가을은 가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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