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 아래 모종을 심는 순간부터 가을 들기름을 짜기까지. 잎들깨는 물론, 들기름까지 수확하고 싶다면? 텃밭에서의 순환 체험을 하며 느낀 배움을 나눕니다.
봄날의 약속, 들깨를 심다
들깨를 처음 심었던 해가 떠오른다. 초여름 햇살이 따스했던 5월, 작은 텃밭 가장자리에 조심스레 모종을 옮겨 심으며 괜히 마음이 설렜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경험 있으실 거다. 한 포기, 두 포기. 흙을 덮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주며 마음까지 함께 심었던 것 같다.
그때의 들깨는 마치 나의 손길을 기억하는 듯, 무성하게 잎을 피워 올렸다. 어쩌면 들깨라는 식물은, 인간의 손길을 가장 민감하게 기억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깻잎을 위한 첫 걸음, 5월의 모종심기
깻잎만 키워 먹겠다면 5월 중순부터 6월 초 사이, 잎들깨 전용 모종을 심는 게 가장 수월하다. 특히 남부지방이라면 이보다 2주 정도 일찍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엔 씨앗을 직접 파종해 보려 했지만, 결국은 잘 자란 모종을 사다 심는 쪽을 택했다. 그게 훨씬 간편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고 나면 약 한 달 후, 어느새 향긋한 깻잎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깻잎을 보내줬더니, 상추와 달리 깻잎은 그 향 하나로도 밥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깻잎은 단지 반찬이 아니라 계절의 냄새를 담고 있다. 이른 아침 물을 주다 손끝에 묻어나는 깻잎 향은, 비 오는 날의 흙내음과 어우러져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들기름까지 바라본다면 6월부터 본격 시작
잎뿐만 아니라 열매까지 수확해 들기름을 짜고 싶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씨앗은 6월 중순 장마가 시작되기 전, 본밭에 바로 파종해야 한다. 텃밭에 파종한 씨앗은 1개월 동안 육묘하며 모종으로 키우게 된다. 장마 전에 씨앗을 심는 이유는 분명하다. 장맛비는 씨앗을 씻어내릴 수 있으니 그 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귀한 작물로 여겨졌다. 들기름은 고소한 맛과 함께 약성도 있어서 예전에는 출산 후 몸조리를 위해 일부러 들기름에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들깨를 키운다는 건 단지 식재료를 얻는 걸 넘어서, 조상의 지혜와 계절의 리듬을 따라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참새도 좋아하는 들깨, 보호는 필수
씨앗을 파종한 후엔 흰색 부직포나 신문지로 덮어줘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새 때문이다. 들깨는 참새가 무척 좋아하는데, 조그만 씨앗을 모조리 쪼아먹어버릴 수 있다. 몇 해 전, 아무 대비 없이 심었다가 씨앗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마치 텃밭이 전쟁터처럼 느껴졌었다. 씨앗을 쪼아먹는 새들, 뿌리를 파헤치는 고양이들, 무심한 장마.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됐다. 자연을 상대하는 농사는 인내와 배움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모종 아주심기는 7월 중순 장마 속에서
7월 장마철, 비가 그친 날을 골라 모종을 본밭에 아주심기 하면 식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땅이 촉촉해 물 주지 않아도 되고, 모종도 훨씬 빠르게 자란다. 실제로 해본 결과, 장마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물을 공급하는 것이 물주기 노동을 크게 줄여준다. 6월 중순 파종, 7월 중순 아주심기는 들깨 재배에 있어 황금 조합이다.
모종을 옮겨심을 때는 살짝 눕혀 심는 것도 방법이다. 뿌리가 더 넓게 퍼지면서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요령인데, 그분은 평생을 텃밭과 함께 살아온 분이었다. 그분의 들깨는 마치 작은 숲처럼 자라났고,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셨다.
가을 햇살과 들기름의 만남
들깨는 대개 10월 중순, 서리 내리기 직전에 수확한다. 가을 햇살에 바삭하게 말린 들깨는 이듬해 겨울까지 맛 좋은 들기름으로 우리 식탁을 책임진다. 수확 후에는 강하게 털어야 한다. 참깨처럼 잘 털리지 않기 때문이다. 깨끗이 씻고 햇볕에 다시 말린 뒤, 방앗간으로 향하면 11월 즈음 고소한 햇 들기름 한 병이 완성된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마당 한복판에 멍석을 펴고 들깨를 털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 비벼서 껍질을 벗기고, 날씨 좋은 날 햇볕에 말려서 방앗간에 가면, 그 고소한 향이 집안 가득 퍼졌었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 내가 텃밭에서 들깨를 키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바꾸는 작은 수확
들깨를 심는다는 건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일이 아니다.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 작고 여린 생명을 돌보는 손길, 그리고 수확의 기쁨까지. 텃밭은 우리에게 삶의 속도를 천천히 돌이켜보게 만든다. 오늘 당신의 마당에도 들깨 한 줄 심어보는 건 어떨까. 다음 계절, 건강한 햇살이 그 줄기를 가득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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