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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전/= 삶의 자세와 지혜

똥고집 시아버지를 꺾은 며느리의 노하우

 

 

어머니를 앞세운 시아버지는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섭섭한 마음보다 시원한 마음이 앞섰던 나와는 다르게 아내를 먼저 보낸 아버님의 마음은 내가 겪어보지 않았어도 이해 되는 마음이었다. 자식된 도리와 인간적인 안쓰러움에 우린 자주 아버님을 찾아 뵈었다. 혼자 식사하는게 마음 아파서 여러가지 반찬을 장만해서 냉동실과 냉장실을 채워 놓았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리 반가워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어머님을 돌아가시게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우리를 미워 하는 마음을 아버님에게서 느껴졌다.

추운 겨울, 생활비 아끼시려고 보일러도 틀지 않고 생활하시는 아버님이 안쓰러워서 겨울엔 우리집에 며칠씩 놀러 오시라고 당부를 했건만 한쪽 귀로 듣고 바로 한쪽 귀로 흘려 버리시던 시아버님이 난 왜 그리도 야속하던지.

어머님이 돌아 가신후 처음 맞는 생신, 당일은 일 때문에 갈수가 없어서 전날 가서 음식 해 드리고 꼭 챙겨 드시라고 당부하고 나오는데 가슴 한켠이 어찌나 시리던지... ...
하지만, 그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버님은 거의 웃지를 않으셨다. 되돌아 보면, 참 냉랭하시고도 정이 없는 분이셨다. 만약 시아버지도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절대로!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그런 시아버님이 바로 나의 시아버지셨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난 며느리로서 사람된 도리는 해야 했다. 형님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까이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떠밀듯 아버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통에 난, 틈만 나면 아니, 남편의 꿈자리가 조금이라도 시끄러운 날이면 아버님댁으로 바로 달려가서 안위를 확인 해야만 했다.

사실, 참 귀찮은 일이 아닐수가 없다. 만사 제쳐 두고 한시간을 달려가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년이 따로 없었다. 다시 해라고 한다면 아니, 만약 지금 사는 이 남자와 헤어진 뒤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그 짓을 새로이 해야 한다면 난 절대 결혼이란걸 하지 않을 거라고 강력하게! 말할수 있다. 두번은 못할 짓이다. 차라리 혼자 살지.

자린고비 이야기, 우린 고전에서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우리 아버님이 그런분이셨다. 절대 내것을 남에게 줄줄도 모르고, 내것은 확실하게 챙기고, 자식을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아주 편하게 사시는 이기적인 분이 바로 시아버지, 나의 시아버지란 얘기다.

참 싫었지만, 바꿀수도 없는 서글픈 현실에서 난 그런 자린고비 시아버지에 똥고집 시아버지 덕분에 마음 고생 심했다.
이루 말로 다 표현 할수는 없지만, 남편과 시숙들 그리고 시아버님 틈에 끼인 샌드위치! 그것이 내 현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마음이 여려터져서 그 고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욱! 하고 화가 나면 막말을 저절로 나오는 터라 작은 시숙께는 못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말이다.

아버님댁에 갈때마다 추운날 혼자 계실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서....난 살살거리며 아버님을 꼬셨다. 제발 겨울엔 우리 집에 와 계시라고!


" 아버님! 제가 잘해 드린다고는 말씀 못 드리지만, 구박은 조금만 할게요!"


이 무슨 귀신 싣나락 까먹는 소리던가! 아니,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구박을 조금만 한다니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난 그랬다. 워낙 고집이 센데다 꺽지 않는 분이시라 솔직하게 말씀 드린 것이다. 어떻게 착한척 네네 하면서 잘해 드릴수가 있단 말인가! 나도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구박은 아주 조금만 한다고 말씀 드린 것이다.

말이 구박이지 내 의견을 말씀 드리겠다는 것이지 어른께 호통치고 그러겠단 뜻은 아니었다.

내 진심이 통해서일까? 며칠이 지난후 시댁에 갔을때 아버님이 말씀 하시는 거였다. 아버님 생신 며칠전에 우리 집으로 오시겠노라고 말이다. 이것을 두고 인간 승리라고 해야 하는겐지.

며칠후 현관을 들어서는 아버님은 멋적은 웃음을 보이셨다. 그리고 난, 반갑게 맞이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릴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 곁에서 쫑알쫑알 거리며 필요한게 없는지 편안하신지 묻기 일쑤였고, 아버님은 즐거워 보였다.

언젠가 아버님은 어머님 제사때 큰 시숙 댁에 갔다가 작은 시숙 댁에서 주무시고 내려 오기로 돼 있었는데, 잠시 들렀다가 바로 집으로 내려 오셨다.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아! 역시 자주 보면 정이 든다고 그랬던가! 어머니때도 그렇더니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는 내가 젤루 편하신가 보다. 이렇게 위로를 삼긴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난 괴로웠다. 자주 들락거리고, 어른이 우리 집에 오는걸 좋아하는 며느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정작 혜택은 다른 형제들이 다 받고, 개뿔도 받지 못하는 며느리의 입장이란?
하지만, 난 해냈다! 그 고집불통 아버님을 꺾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산다.

가끔 넋두리 삼아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배꼽 잡고 웃는다. 세상에 어느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구박을 조금만 하겠다고 말하겠냐며 말이다.
만약, 지금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난 아마 지금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 아버님! 잘해 드린다고 말씀은 못드리겠구요. 대신에 구박은 조금만 할게요!" ㅋㅋㅋ